

루이 14세의 비호 아래 승승장구하던 몰리에르는 문제작 [타르튀프]로 인해 연극 인생 최대 고비를 맞는다. 종교인의 위선을 대담하게 비판하고 나선 이 작품에 교회와 성직자들이 거센 비난을 퍼부었고 이후 [타르튀프]의 공연은 한동안 금지되었다. 수년 만에 겨우 다시 무대에 오른 [타르튀프]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후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타르튀프’는 프랑스어에서 ‘위선자’를 뜻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배우다. 파리에서 출생했으며 1622년 1월 15일 장 바티스트 포클랭(Jean-Baptiste Poquelin)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1644년 6월 28일자로 예명 몰리에르를 사용하며 연극계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이후 그는 30년 동안 오직 연극만을 위해 전력투구하다가 51세 때 공연 도중에 죽음을 맞이했다. 서양 중세를 거치며 비극에 비해 열등한 장르로 간주되던 희극의 미학적 가치를 제고해 근대적 의미에서 희극의 위상을 정립했다. 영국인들이 영어를 셰익스피어의 언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어를 몰리에르의 언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몰리에르의 희극에는 프랑스 고유의 정서와 문화가 마술 같은 언어로 녹아들어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았으나 편안한 삶을 마다하고 연극에 빠져들었던 몰리에르는 13년의 유랑 극단 생활을 거치며 유럽 근대의 여명기에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계층의 삶을 경험했다. 유랑을 마치고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파리 연극계로 재입성해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지만 수많은 시기와 모함에 맞서야 했다. 그는 52세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40대 초반에 발병한 폐질환에 시달렸지만 한순간도 웃음을 놓지 않았다. 이 위대한 희극 작가의 작품들은 300년이 넘도록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삶의 울림이 있는 웃음을 선사해 왔고 앞으로도 우리에게 웃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고 삶이 주는 감동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그의 초기 연극 활동은 지방에서 이뤄졌으며, 그의 이름으로 알려진 최초의 작품으로는, 리옹에서 공연된 <경솔한 사람>(1655)과 베지에에서 공연된 <애정 다툼>(1656) 등을 꼽을 수 있다. 극작가 몰리에르의 명성은 그의 극단이 1658년 10월 24일 옛 루브르 궁전의 근위대 처소에 마련된 가설무대에서 루이 14세와 궁정을 위해 공연한 코르네유의 <니코메드>와 그 자신의 작품 <사랑에 빠진 의사>를 통해서 확고해졌다. 마침내 1662년 12월 26일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둔 <아내들의 학교>와, 1664년 5월 첫 번째 <타르튀프> 공연은 그를 격랑과 추문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이어서 그는 <동 쥐앙>(1665)을 무대에 올려 사태를 가일층 격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