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률론』은 서구에서 법률의 보편원리를 최초로 다룬 책이다. 키케로의 『법률론』은 로마인이 제국을 이룬 다음에 확립한 자기 정체성에 비추어 로마시민의 법 관념을 보여주고 있다. 키케로 이전의 법률가들은 하나같이 실정법에 대한 해설에 치중했고 성문법을 맹목적이고 절대적으로 신뢰해 현행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와 달리 키케로는 법률가들의 법개념 자체를 초극해 유일하고 영원한 신 개념, 만민 평등, 인간과 신 사이의 유사성, 도덕법의 신적 원천, 신의 원리, 인간은 선의 실현과 인간 완성 그리고 덕성의 함양을 지향하는 본성이 있다는 성선설, 정의가 법의 근본이며 정의의 개념은 동서고금에 불변한다는 신념 등 철학적 기본 개념을 도입했다.
서양 법의 원류는 로마법이기에, 서양의 법을 수용한 우리나라의 법체계도 멀리 보면 로마법의 체제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이 책을 통해 시대의 벽을 넘어 로마법의 보편화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또한 이 책 화보에 수록된 본문사진은 바티칸 도서관 서고에 소장된 것으로 바티칸 도서관장 파리나 대주교(S.E. Arcivescovo Raffaele Farina)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권두에 실린 로마의 관직·제도 일람은 복잡한 로마의 관직명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편집하여 책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BC 106년 1월 3일 출생. 키케로는 로마 최고의 웅변가이자, 문인이었으며 기원전 63년에 로마의 최고 정치 지도자인 콘술로 활동했다. 원로원 중심 체제를 옹호한 키케로는 독재자 카이사르의 정치적 노선에 강한 반대를 표명하였다. 카이사르는 그러한 키케로를 자신의 친구로 삼으려 했지만, 키케로는 오히려 동방식의 왕이 되려는 카이사르의 야심을 로마 시민에게 폭로하며 경각심을 일깨우게 된다. 기원전 56년 이후 키케로는 정치에서 물러나 은둔생활을 하며 그 외로움을 저술을 통해 달랬고 그 결과 명저들을 남긴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당하고, 그에 못지않은 독재자 안토니우스가 정권을 잡고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자, 키케로는 원로원에서 과감히 그를 국가의 적으로 선언하려 애썼다. 그런 그의 의지는 안토니우스가 보낸 자객들에게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꺾이게 된다.
그의 저술로는 『최고선에 관하여 De Finibus』, 『신의 본성에 관하여 De Natura Deorum』, 『도덕적 의무에 관하여 De Officiis』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