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사업의 실패에 이은 아내와의 이혼으로 인해 '나'는 현실에서 밀려나온다. 그러나 다시 시작하기엔 먼지처럼 쌓인 지난 세월의 더깨가 너무나 두껍다. 과연 현실이란 무엇이며, 꿈은 무엇인가? 쫓기듯이 찾은 바닷가 마을에서 만난 여인. 여자와 함께 찾아간 말무리 반도. 바다를 향해 달려나가지만 여전히 육지에 붙잡혀 있는 말무리들처럼, 다리를 저는 여자의 꿈 역시 안타깝기만 하고...... 결혼하기 전처럼 외형상으로는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지점은 내가 출발한 원점이 아닌 것 같았다. 설령 순환 구조를 이루며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일순(一巡)의 과정이 있었다 해도, 십 년 세월의 시차가 확인시켜준 것은 불행하게도 현실과 의지가 극단적으로 어긋나버린 한 사내의 초췌한 몰골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원점으로 회귀한 것이 아니고 또한 과거로 환원한 것도 아니었다. 원귀처럼 떠도는 꿈이 아니라 꿈의 원귀가 되어 십 년 세월을 살아왔다면, 꿈이거나 원귀이거나 한심하기로는 피차일반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 잡초를 뽑으며 나는 뿌리를 뽑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십 년, 나 자신이 잡초처럼 척박한 땅에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으니 손놀림이 모지락스러워지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닐 터였다. 그러니 잡초가 아니라 가슴에 응어리진 자기 혐오를 뽑아내기 위해 나는 정신없이 땅을 파헤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스스로 뿌리를 내렸으나 내 스스로 거두지 못한 끈질긴 비관과 절망의 뿌리, 그것들은 지금 내 영혼의 어느 암층에까지 뻗어나가 있을까.